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장은 배와 운명을 함께한다 (문단 편집) === 실제 사례 === 괄호 안에 선장들이 '''[[빤스런|무책임하게 도망치면서]] 희생된 사람들'''의 숫자를 등재한다. * [[카가(항공모함)|카가]](811명 사망/실종)[* 최종적으로 집계된 인명피해라서 지휘권 계승 이전의 인명피해까지 포함되어있으므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.]의 함장 권한대행 아마가이 다카하시 중좌 - 원래 함장이 아니라 항공장교였지만 [[미드웨이 해전]]에서 미군 급강하폭격기의 공격에 함교가 직격되면서 지휘부가 몰살되어 어쩔 수 없이 함장직을 인수했다. 그러나 '''퇴함 명령을 내리지 않고 탈출해버리면서''' 인명 피해를 더욱 키웠다.[* 당시 일본군은 일단 항공병과를 키워 보고 그 병사가 항공계열로 들어올 자격이 없다 싶으면 가차없이 항해-정비 병과로 몰아넣었다. 이런 시스템 상 '''항공만 계속 맡아서 해 온 항공장교'''가 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느 나라든지 '''모든 해군 장병들은 최소한 퇴함 명령이 내려져야만 퇴함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.'''] * [[야머스 캐슬호 화재 사고|야머스 캐슬호]]('''90명 사망''')의 Byron Voutsinas 선장 * [[한성호 침몰 사고|한성호]](19명 사망, 42명 실종)의 선장(이름 불명) - 심지어 이 선장이라는 사람도 자격 없는 갑판원이었다. * [[스칸디나비안 스타호 화재 사고|스칸디나비안 스타호]]('''159명 사망''')의 선장(이름 불명) - 엄밀히 말하자면 무책임하게 먼저 튀진 않았고 구조 신호를 보내고 화재 대응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은 했지만, 화재 상황, 방화벽 가동 상황, 승객 대피 현황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사망자가 발생하여 직무유기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다. * [[오세아노스호 침몰 사고|오세아노스호]]('''전원 생존''')의 야니스 아브라나스 선장 - 그나마 비선박직 승무원들은 다행히 배에 남아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승객 전원이 생환할 수 있었다. * '''[[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침몰사고|알 살람 보카치오 98호]]'''('''1018명 사망''')의 선장(이름 불명) - 여기 등재된 사건 중 최다 희생자 수를 자랑한다. * '''[[코스타 콩코르디아 호 좌초사고|코스타 콩코르디아호]]'''(33명 사망)의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 * '''[[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|세월호]](304명 사망)의 [[이준석(선장)|이준석 선장]]''' - 이쪽은 선장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타수, 항해사, 기관사 등 다른 여러 [[상선사관|선박직 승무원]]들도 같이 튀었다. 반면 [[직별장]] 등 사무직 승무원들은 영웅적 행동을 하다가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양대홍 또한 직별장 (사무장)으로서 배와 운명을 같이 한 것이다. 결국 광주고등법원에 의해 구조의무 위배로 인한 살인죄를 적용받아 이준석 선장은 무기징역, 다른 직원들도 전원 실형을 선고받았다. * [[2015년 지중해 난민선 침몰 사고]]('''800명 이상 사망''')의 모하메드 말리 말레크 선장 * [[둥팡즈싱 호 침몰 사고|둥팡즈싱호]]('''442명 사망''')의 장슌웬 선장 * [[킴니르바나 호 침몰사고|킴니르바나-B호]](62명 사망)의 워런 올리비에로 선장 번외 * [[대구 지하철 참사]]('''192명 사망, 6명 실종''')의 1080열차 기관사. 비록 사령실의 지시로 마스터키를 뽑아서 탈출하긴 하였으나[* 원칙상 타인이 운전실에 들어가 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기관사는 비상상황 발생시 마스터키와 제동핸들을 가지고 나가게 되어있다.] 마스터키를 뽑은 후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혀 버려 승객들이 전동차에 갇혀 버렸고 탈출 때도 수동으로 출입문을 열라는[* 당시 제작된 전공차들은 모두 공기식 출입문을 사용했기 때문에 비상 탈출 레버가 좌석 아래쪽에 숨겨진 구조였다. 그러나 당시에는 이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출입문을 열지 못해 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.] 안내방송 또한 없어서 결국 사후 안전 관리 문제로 금고 5년을 선고받았다. 비록 도시철도 사고이긴 하나 선박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던 상황이라 여기에 등재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